쓰기
아주 오랜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해서 피곤하다고 느낄만큼 바빴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만큼 무기력했다.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쓰고서 생각했다. 가끔 어떤 단어는 설명이라기보다는 확언에 찬 규정같아서 사용하기가 어렵다. 지난 날의 지나간 마음들이 그랬다.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그냥 끙 앓으며 지냈던 날들.
'서른 살에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는 서른이 되기 전 어느날에 결심했다. 지난해(2023년)에 진짜 서른살이 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시 29살 생일파티를 하게 되었고, 올해의 나는 서른살인지 서른 한 살인지 모르겠다.
2월에 사이판 여행을 다녀왔다.
2월에 전 직장에 대한 글을 썼고, 동네에서 소소하게 이슈가 되었다.
3월에 3.8 세계여성의 날에 공연을 했다.
3월에 직장인 밴드에서 베이스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4월에 퇴사를 했다.
4월에 퇴사에 관한 글로 생에 첫 원고료를 받았다.
5월에 예술소모임 지원사업 공모에 신청해서 선정되었다.
6월에 입사를 했다.
7월에 '2030 퇴사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8월에 내 생일파티를 했다. 술집을 빌리고, 초대명단을 만들어 초대장을 날리고, 음식을 사고 공간을 꾸몄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친구들에게 편지도 썼다. 포옹을 하며 친구들을 맞이했고 많이 웃고 술을 많이 마시며 놀았다.
9월에 직장인 밴드 공연을 했다.
10월에 예술소모임 지원사업으로 '모두를 위한 퇴사 축하파티'를 열었다.
11월과 12월은 깊고 진한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일년을 바쁘게 살았고 24년의 1월이 되었다.
6월 이후로는 티스토리에 도통 글을 쓰지 못했고, 일기를 쓰는 날도 며칠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글을 단 한 글자도 쓰지못하고 지나오는 날들은 깊고 깊은 무기력의 지표들이었다.
지난 한 해가 즐거웠지만, 나를 여러방면으로 소진한 것 같다. 글이든 그림이든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내 안의 양동이가 다 동이 나서 텅 비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을 우다다 쫓으며 몇 해 간을 살았다. 특히나 그동안에는 일하면서 썼던 에너지들을 23년에는 바깥으로 사용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24년엔 나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