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31

당신의 쇳덩이를 들고 삶의 전쟁에 뛰어들 수는 없겠지만

다른 색깔 다른 모양 다른 무게의 쇳덩이 서로가 들어줄 수 없는 딱 그모양의 쇳덩이 - 신승은 중에서 - 신승은님의 ‘쇳덩이’는 노래가사가 콕콕 박혀서 주변사람들에게 여러번 들어보라며 말해주었던 곡이다. 네가 든 쇳덩이를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일 때, 내가 든 쇳덩이가 있을 때 더 많이 생각나는 노래다. 대신해줄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더 슬퍼질 때도 있었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있다. 슬픈 것도 아니고 우울한 것도 아니여서 무(無)로 느껴지는 날. 그런 순간에도 비집고 들어온 문장은 애정이 너무나 가득해서 날 울게 만들었다. ‘쇳덩이를 들고 삶의 전쟁에 뛰어들 수는 없겠지만, 힘이 필요할 때 함께 차를 마실게요.’ 어차피..

일상의 글 2021.01.19

나를 길에 두고 왔다

살아있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다. 잊지않으려고 여러번 되뇌였던 순간들. 나는 그런 것들이 꼭 필요한 때가 생기고 말아서, 꺼내서 쓴 다음 다시 잘 곱씹고 넣어두었다. 토요일에는 모든 것이 돌맹이가 되었다. 모든 건 돌맹이가 되어서 와르르 쏟아부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없는 것은 그릴 수가 없다. 본 적도 없는 건 흉내낼 수가 없다. 소문도 없고 발자국도 없고 냄새도 없다.

야간할증이 붙기 전에 퇴근하는게 목표였던 날

내 일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미칠듯이 일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주엔 두 번 야근을 했다. 저녁 9시 반에 퇴근해서 그 피로가 일주일 내내 가는 기분이었는데, 절대 그럴리가 없지만 ‘내 간이 여기쯤에 있구나. 너무 피곤해서 간이 아픈 것 같아’라고 생각할 만큼이다. 오늘은 야간할증 붙기 전에 퇴근하는게 목표였다. 그리고 그 목표는 실패했다. 손이 느리고 일머리도 없는데, 인력도 부족해서 1년 차 때 미친듯이 야근을 많이 했다. 쪽잠자고 출근하는 날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지만, 1월 2일에 또 미친듯이 야근한 게 기억이 난다. 매일 야근을 했던 건 아닌데 사무실에서 날새며 일했던 날들이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약간 돌아버린 야근문화는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그..

일상의 글 2021.01.15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모르지만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

매일 출근하듯이 매일 글 한 편을 쓰자고 마음먹었다.글을 쓰지 못하고 지나간 날이 있기도 하고, 12시 자정을 넘긴 뒤 글을 마친 적도 있다.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마감 넘기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작가라고 말했다. 출근은 미룰 수가 없고 내 마음대로 빼먹을 수도 없다. 글쓰기에 대해 조금은 그런 마음을 갖고싶다. 물론 출근은 안하면 제일 좋고 글쓰기를 의무적인 마음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니다.다만 무엇이라도 하면 느는 것처럼 글쓰기도 매일 하고 싶은 마음이다. 느는 게 맞춤법을 찾아보는 횟수 뿐이라도 뭐 어때. 내가 다른 사람의 글 쓰는 행위를 통해 글쓰기를 마음먹은 것처럼, 소소한 나의 글을 보고 블로그를 열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모르지만 우리라고 부르는..

꾸뻬씨를 닮은 여행자

한 2년 전 쯤 ‘헛헛함 대응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하며 주변사람들에게 헛헛함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한 열 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질문한 결과로 한 열 가지쯤의 헛헛함 대응 방안과 각각의 단점에 대해 적어둔 글도 있다. 예를 들면 헛헛할 때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가 있는데, 이 방법의 단점은 전화할 친구가 없으면 더 헛헛해진다는 점이다. 헛헛한 모두를 위해 잘 정리해서 배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직도 정리 안된 파일로 남아있다. “헛헛하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나는 단어 하나로 모두가 같은 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단어의 어감을 잘 못느끼던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 말 자체가 마음을 허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

일상의 글 2021.01.13

말문이 막히는 대신 마음이 턱, 막히는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이 있다. 말이 나오는 문은 입이니까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하는 건 할 수 있다. 어울려 사는 사람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내다보니 그런 꼴이 되었다. 나의 말을 하는 것은 어렵다. 손끝까지 몰려드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가 없다. 국어사전이라도 있으면 'ㄱ'부터 단어를 열심히 찾아내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배운 언어가 얄팍해서 습관적으로 나의 감정을 '생각한다' 라는 단어로 퉁치려고 한다. 숨과 같이 얹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너무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말하고 싶지 않다. 말이 무용하다고 느낄 때 말하지 않게 된다. 나에게 던져진 이 감정이 모두 내 안에서만 머물러있다. 모두가 내어놓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내일은 아주 오랜만에 상담을 가는 날이다. 작년 4월부터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결심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당시의 내가 너무 힘들었기 힘들었으니까. 살면서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상담을 받은 건 아니다. 그 때의 나에게 상담이 필요했고, 내가 상담을 시작할 수 있는 조금의 힘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조금의 돈도 있었고. 인간 수명 중 내가 살았던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살면서 가장 힘든 날은 언제나 더 어릴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때가 좋을 때야' 라고 말하는 때였다. 더 어리고, 더 경험한 것이 적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스스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대부분 인간이 놓인 상황이란게 스스로 해결..

일상의 글 2021.01.08

글자의 샘이 마르는 날

언젠가 하와이에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우클렐레를 연습 해 놔아지. 4월에 겨울 모자를 샀으니 새로 산 모자를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캐나다를 가야겠다, 라고 말했지만 가지 못 했다. 스무살이 되면 인도를 가야지, 했지만 가지 못했고 대학 졸업을 하면 정말 가야지 했지만 가지 못했다. 하려다가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냥 상상으로만 남아있는 것들. 두 번 정도 글을 쓰려고 적었다가 제목을 두 번 고치고 글을 모두 지웠다. 쓰려다가 쓰지 못한 글자들. 그 글자들은 어디로 갈까. 내 안에 남아있을까, 녹아서 사라지는 걸까. 감정과 기억은 언제나 휘발되는데 나오지 못한 말과 글들은 정말 사라지는게 맞을까. 귀가 먹먹해서 글자의 샘이 말라버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결과물을 봐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실제 예술계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었고 나는 술을 마시며 “서른 살엔 예술가가 될거야!” 라고 외치고 있는 그냥 취한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 봐주었으면 하는 어떤 결과물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창작물을 소비해 주는 이가 없는 느낌을 잘 몰랐다. 그래서 청자나 독자가 꼭 있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게 예술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만든 영상은 유튜브에, 낙서와 같은 그림은 인스타그램에, 일기와 같은 글은 티스토리에 쓰고있다. 봐주는 이 없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라는 옅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나 그림이나 영상은..

인간의 정형행동

어제는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불안해서 붕붕 뜨는 마음은 미룬다. 모른 체 하고싶어서 핸드폰을 봤다가 부엌을 갔다가, 다시 침대로 왔다가 한다. 핸드폰을 켜고 인스타그램도 보고, 카카오톡도 보고, 뉴스기사도 본다. 유튜브도 봤다가 다시 또 처음부터 반복한다. 의미없는 걸 반복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의미없이 반복된 행동을 하는 정형행동 같다. 정형행동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지만, 목적이 없는 행동’을 뜻한다. 협소한 사육공간, 유아기 때의 놀잇감 부족, 스트레스 등에 의해 발병된다고 한다. ‘야생동물과 다르게 사육되는 동물들은 무엇하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게다가 동물원에는 동물들을 정신적으로 자극하는 흥밋거리도 없다. 이렇게 비좁고 단조로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동물들은 정형행동을 하거나 하루 종..

일상의 글 202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