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 전 쯤 ‘헛헛함 대응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하며 주변사람들에게 헛헛함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어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한 열 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질문한 결과로 한 열 가지쯤의 헛헛함 대응 방안과 각각의 단점에 대해 적어둔 글도 있다.
예를 들면 헛헛할 때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가 있는데, 이 방법의 단점은 전화할 친구가 없으면 더 헛헛해진다는 점이다.
헛헛한 모두를 위해 잘 정리해서 배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직도 정리 안된 파일로 남아있다.
“헛헛하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나는 단어 하나로 모두가 같은 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단어의 어감을 잘 못느끼던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 말 자체가 마음을 허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어찌되었든 나의 질문으로 인해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한 번 쯤은 ‘헛헛함’에 대해 생각해 봤을 거다.
한동안을 헛헛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만하고 다녔더니, 나에 대한 이미지가 헛헛한 인간이 된 것 같다.
큰 구덩이같은 마음에서 벗어난 뒤로도 나를 보면 어쩐지 안쓰러워하는 듯한 눈빛을 받는 이유는...
“헛헛함은 좀 어때? 해결이 되었어?”
퇴근 후에 친구와 전화하며 나누는 스몰토크 시간. 내가 많이 고민하지 않고 “응!” 이라고 힘차게 대답하자 친구가 당황한 것 같았다.
나도 확신에 찬 대답에 스스로 당황했는데, 기억을 되돌리며 헛헛함을 빠져나온 경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전날은 하염없이 툭 떨어진 마음이었고, 새벽 4시까지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가 잠들었었다. 힘겹게 눈 뜬 아침은 자괴감이 들었고 고통스러웠는데
출근해서 일하다보니 까먹었다. 졸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보니 아침의 감정들을 잊어버렸었다.
일하는 중간에는 내가 쓴 글을 읽어준 사람들의 숫자를 확인하고, 내가 그린 그림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기분이 좋아졌었다.
퇴근 후에는 내 목소리가 듣고싶어 전화했다며 잘 지내는지 묻는 친구들의 연락을 연달아 받았다.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좁고 깊게 인간관계를 맺는터라 몇 없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는데 같은 날에 모두 날 생각해주시다니요.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시그널을 읽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뒤에 엄마와 통화를 하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거의 처음으로 말했고, 무언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해결됐다고 느꼈다.
평소에 비해 유례없이 많은 전화를 하면서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채워준 것은 아니였다.
그냥 모든 대화에서 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애정을 느꼈다.
내가 노력한 것은 하나도 없어. 사실 나의 노력으로 헛헛한 마음을 바꾼게 아니라 상황적인 것과 주변 사람들이 우주의 기운을 받은 덕분이야.
내가 무엇인가를 했기때문에 바뀐 건 아닌 것 같아.
특수한 결과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해보고자 하였는데, 말하다 보니 내가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게 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애정과 고마움을 느꼈다.
여기까지 나의 설명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행복을 찾아 여행하는 꾸뻬씨같은 여행자 같아. 행복도, 헛헛함도 정의하기 어렵고 그 과정을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정의내리고 과정을 찾는 게 여행자같아”
내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뻬씨를 닮은 여행자라는 말 또한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숲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표시를 해 두는 것처럼 다시 되돌아 나올 길을 알기 위해서 과정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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