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20

나이는 스물여덟살이고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줌 강의를 켜놓고 저녁밥을 하고, 밥이 지어지는 동안 갑자기 우당탕 냉장고 청소를 하고, 말라가는 가지를 보고는 갑자기 가지튀김을 해 먹었다. (그리고 기름이 튀어 난리가 난 주방을 청소했다.) 이 정도의 의지가 있는 날에서야 글을 쓴다. 평소엔 사먹거나 배달하는 게 싫어서 꾹 참는 수준이다. 퇴근을 하며 생각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그러다가 아침을 맞는 시간에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또 출근해서 일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조금은 잘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심지어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조금 남아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백수시절,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썼다. 1년 뒤 나에게 쓴 편지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

일상의 글 2021.07.06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찾아서 - 트루 럽 앤 파인 해피니스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누군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에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내가 나를 제일 사랑해볼까?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반짝인다. 나는 예술가와 같이 자기의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반짝이는 노래를 부르며,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나는 타인의 사랑의 결과물들만을 쫓으며 그 곁에서 사랑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은 다 사랑꾼들이다. 자우림 콘서트에 갔다가 혁오 콘서트에 갔던 경험이 떠올랐다.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에 겨워 살길 바란다는 오혁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자우림콘서트에서..

선생님, 다음 주는 상담 안 갈래요

금요일이었던 어제는 무리해서 연차를 썼다. 목요일 저녁 6시, 퇴근시간에 사무실에 앉아 고민을 했다. 야근을 할까 금요일에 쓰려고 했던 연차를 반차만 쓸까. 사실 일이 많은 상황이여서 칼퇴 + 하루 연차는 가능한 선택지에 없었다. 금요일에 반차만 쓰려고 와도 일하다보면 분명 오후에 퇴근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같이 야근하고 내일 푹 쉬라는 동료의 꼬드김에 목요일 저녁 9시가 넘는 시간까지 야근을 했다. 하지만 당연히 일은 다 안 끝나 있었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금요일 오후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연거푸 2잔을 마시고 기획안을 썼다. 더 이상 미루면 큰일 난다! 는 마음으로 썼다. 집안일이 발에 채이는 집에서 탈출해서 카페에 가느라 밥을 잘 안챙겨 먹고 카페인과 빵만 먹어서였는지, 집에 와서 잠이 ..

일상의 글 2021.05.29

완성하지 못하는 글들에 대해서

종이에 쓰는 일기는 글자가 쓰여진 순간부터 지울 수 없는 완성된 글이 된다. 일기를 쓰려 마음을 먹고 실제로 쓰기까지 하는 날이라면 그 날은 아무리 졸려도 어쩔 수 없이 문장을 마쳐야 하는 날이다. 반면에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을 사라지고 자판을 또각일 마음도 없어서 막막한 오늘과 같은 날도 있다. 둘러보니 지난번 글도 완성하지 못한 채 멈춰두었다. 타이핑을 멈추는 것은 펜을 멈추는 것보다 쉽다.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은 가능하면 모든 것을 미루고 싶어하는 나의 습성과 닮아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고만고만한 글인데도 왜 어떤 것은 쉽게 밖으로 꺼내놓게 되고, 어떤 것은 마무리를 짓지 못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있을까.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피하고 ..

일상의 글 2021.05.25

눈물을 말릴 시간이 필요해

오늘은 몇 주만에 상담에서 많이 울었다. 지겹고, 재미없고, 가기 싫은 몇 주간의 상담을 지나 만나게 된 시간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느끼는 점은 내가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상담은 언제나 나의 약함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의 애정을 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을 인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언제나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게 믿으려 노력해왔던 것 같다. ‘난 혼자서도 잘 하는 사람이야’라는 나의 생각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써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그맨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놀리는 상황을 개그..

일상의 글 2021.04.18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신다면

2~3주를 내내 누워지냈다. 하루에 한 가지 일정 밖에 할 수가 없어서 출근과 퇴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겨우 씻고 겨우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일이 너무 힘들거나 지쳐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런 상태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걸까,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하지 스스로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 뒤에 멍울이 생기더니 하루 사이에 귀 옆 뒤통수까지 부어올랐다. 병원에 가보니 임파선염이라고 해서 일주일 간 약을 먹었다. 그 다음 주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었다. 기력이 너무 없어서 약을 지으러 왔다고 하니, 한의사 선생님이 ‘아무 것도 안해도 가장 건강할 나이’인데 맥도 약하고 소화기능도 떨어져 있다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나타나는 전..

일상의 글 2021.04.12

성별을 표기할 수 있는 편안함 또는 권력에 대해서

어떤 지원사업 공모기획안을 작성하다가, 구성원의 성별을 기입하게 된 칸을 만났다.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나의 성별을 적다가 찰나의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고민하지 않고 하나의 지정성별로 나를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얼마나 편리하며 편안한 것인지. 내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나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벽을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개인과 각각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한다거나 안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주 잠깐의 순간에 나에게 있는 권력에 대해 인지했다. 내가 편안한 그 순간이 타인에게는 차별의 순간이다. 공간을 이용하는 것부터 서류에 표기하는 것까지 아주 일상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주 편안한 동시에 차별의 순간이다.

일상의 글 2021.03.26

빈 벽

2020년 12월 13일 저녁 11시 28분 사진이 가득 담겨있는 벽에서 올해의 사진들을 떼어냈다. 찬찬히 사진을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애정 가득해지는 마음에 괜히 혼자 뭉클해져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보기만해도 밝고 귀엽고 재미있고 따뜻한 사람들. 이 사람들과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구나. 내가 깊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도 나에게 깊은 애정을 가져주리라고 믿고있기 때문일 거야. 만나서는 매일 먹거나 매일 울기만 하는 사람들인데 왜그렇게나 좋은지. 한 가득 담겨있다가 떨어져 나온 사진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 것들이 나를 든든하게 해 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제 괜찮아져서 사진을 떼고 싶어졌나보다. 내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

일상의 글 202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