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줌 강의를 켜놓고 저녁밥을 하고, 밥이 지어지는 동안 갑자기 우당탕 냉장고 청소를 하고, 말라가는 가지를 보고는 갑자기 가지튀김을 해 먹었다.
(그리고 기름이 튀어 난리가 난 주방을 청소했다.)
이 정도의 의지가 있는 날에서야 글을 쓴다.
평소엔 사먹거나 배달하는 게 싫어서 꾹 참는 수준이다.
퇴근을 하며 생각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그러다가 아침을 맞는 시간에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또 출근해서 일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조금은 잘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심지어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조금 남아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백수시절,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썼다. 1년 뒤 나에게 쓴 편지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를 바란다는 글을 썼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나도 일터가 잘 맞고, 일터에서도 나의 쓸모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고통의 크기는 확실하게 줄었지만 종류가 달라진 느낌이다. 잘 버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성이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재미있기도 했다가, 의미를 찾기도 했다가, 더 발전하고 싶기도 했다가, 견디는 것만 택하는 것 같아 답답할 때도 있다.
진로(進路)는 말 그대로 ‘나아갈 길’이다. 나아갈 길을 모르겠는 상태에 빠져있다.
퇴사 후 밤중에 너무 불안해서 인터넷에서 1시간이 넘는 진로적성검사를 해 봤다는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며 살아오긴 했는데 진로를 모르겠다.
불안과 삶에 대한 애정을 함께 끌어안고 또 하루를 지나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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