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31

불운이 지나간 자리에서 반짝이는 것을 찾는 일

기꺼이 자신의 불운을 나누는 여성들. 불운은 때때로 여성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불운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 삶의 불운들이 살아나서 내 마음을 찢고 베는 것 같다. 피할 수 없이 들이닥친 고통 앞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담담한 이야기. 그 어떤 작가의 글 보다 나는 여자들의 삶의 이야기에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 불운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기 위해, 그리고 같이 잘 살아가자고 말하기 위해 글을 써 주는 것만 같다. 불운이 지나간 자리에서 삶의 기쁨과 사랑에 대해 말하는 여성들을 사랑한다. 바닷가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소중히 주머니에 모아담듯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잘 간직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각자 찰랑이는 아픔이 있다. 가끔 왈칵 쏟아지기도 하는 그런 아픔. 그렇지만 나는 여..

나에게 밥을 해 주는 즐거움

할 수 있는 한 가장 길게 휴가를 쓰며 쉬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병원 검진을 갔다가 가지, 두유, 순두부를 사서 집으로 왔다. 30분 만에 아주 맛있는 가지튀김과 순두부 미역국을 만들어서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했다. 가지를 튀기면서 나에게 밥을 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생각했다. 식사를 차리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나를 위한 자발적 노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출근을 할 때는 점심식사가 귀찮았다. 밥보다는 잠을 좀 자고 싶었고, 매일 시간을 내어 무언가 먹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성가신 일이었다. ‘아, 또 밥을 먹어야 하는구나’싶은 마음이었다. 하던 일을 빨리 끝내고 빨리 허기는 채우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쉰 다음 빨리 일처리를 끝내고 싶은 시간이었다. 휴일이라도 체력이 방전된 주말에는..

일상의 글 2021.08.09

마음과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쓰지는 않으려고 한다

일에 대한 애정이 더 클 때에는 나의 마음과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사용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과가 좋았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서 나는 어디에 내 마음과 체력을 쏟았던 걸까 알 수가 없어진다. 고통의 파고를 넘고 넘으면서 나를 깨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란 얼마나 약한가 하면, 아주 작은 것에도 아주 천천히 망가질 수 있다. 어제는 일을 조금 했고, 외근 후에 퇴근을 해서 퇴근을 일찍했다. 오늘은 많은 에너지에 비해 일을 하기 싫어 꾸물대다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했다. 어제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있었다. 오늘은 마음과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쓰지는 말아야지 다짐하며 퇴근을 했는데 알 수 없이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야근을 ..

일상의 글 2021.07.22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글쓰기

대부분의 경우,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른다. 에너지가 넘칠 때에도 움푹 패인 구덩이에 빠져서 멈춰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우왕좌왕 하고 있다. 너무나 글을 쓰고 싶을 때에는 글을 쓴다. 새로 산 책이 흥미를 끌 때에는 책을 조금 읽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나에게 멈춰있다. 목적지도 방향지도 없이 시간만 나에게 던져진 것 같다. 요즘의 기분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일렁인다. 커피를 줄이지 못하고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는 여름의 강렬한 기운을 온 몸으로 받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매번 머리가 물 속에 잠겨있는 기분에서 깨어나 순간순간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끼고 머리가 명료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커다란 기복의 싸이클에서 상승가도에 올라..

나이는 스물여덟살이고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줌 강의를 켜놓고 저녁밥을 하고, 밥이 지어지는 동안 갑자기 우당탕 냉장고 청소를 하고, 말라가는 가지를 보고는 갑자기 가지튀김을 해 먹었다. (그리고 기름이 튀어 난리가 난 주방을 청소했다.) 이 정도의 의지가 있는 날에서야 글을 쓴다. 평소엔 사먹거나 배달하는 게 싫어서 꾹 참는 수준이다. 퇴근을 하며 생각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는, 그러다가 아침을 맞는 시간에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또 출근해서 일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조금은 잘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심지어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조금 남아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 백수시절,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썼다. 1년 뒤 나에게 쓴 편지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

일상의 글 2021.07.06

선생님, 다음 주는 상담 안 갈래요

금요일이었던 어제는 무리해서 연차를 썼다. 목요일 저녁 6시, 퇴근시간에 사무실에 앉아 고민을 했다. 야근을 할까 금요일에 쓰려고 했던 연차를 반차만 쓸까. 사실 일이 많은 상황이여서 칼퇴 + 하루 연차는 가능한 선택지에 없었다. 금요일에 반차만 쓰려고 와도 일하다보면 분명 오후에 퇴근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같이 야근하고 내일 푹 쉬라는 동료의 꼬드김에 목요일 저녁 9시가 넘는 시간까지 야근을 했다. 하지만 당연히 일은 다 안 끝나 있었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금요일 오후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연거푸 2잔을 마시고 기획안을 썼다. 더 이상 미루면 큰일 난다! 는 마음으로 썼다. 집안일이 발에 채이는 집에서 탈출해서 카페에 가느라 밥을 잘 안챙겨 먹고 카페인과 빵만 먹어서였는지, 집에 와서 잠이 ..

일상의 글 2021.05.29

완성하지 못하는 글들에 대해서

종이에 쓰는 일기는 글자가 쓰여진 순간부터 지울 수 없는 완성된 글이 된다. 일기를 쓰려 마음을 먹고 실제로 쓰기까지 하는 날이라면 그 날은 아무리 졸려도 어쩔 수 없이 문장을 마쳐야 하는 날이다. 반면에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을 사라지고 자판을 또각일 마음도 없어서 막막한 오늘과 같은 날도 있다. 둘러보니 지난번 글도 완성하지 못한 채 멈춰두었다. 타이핑을 멈추는 것은 펜을 멈추는 것보다 쉽다.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은 가능하면 모든 것을 미루고 싶어하는 나의 습성과 닮아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고만고만한 글인데도 왜 어떤 것은 쉽게 밖으로 꺼내놓게 되고, 어떤 것은 마무리를 짓지 못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있을까.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피하고 ..

일상의 글 2021.05.25

눈물을 말릴 시간이 필요해

오늘은 몇 주만에 상담에서 많이 울었다. 지겹고, 재미없고, 가기 싫은 몇 주간의 상담을 지나 만나게 된 시간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느끼는 점은 내가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상담은 언제나 나의 약함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의 애정을 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을 인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언제나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게 믿으려 노력해왔던 것 같다. ‘난 혼자서도 잘 하는 사람이야’라는 나의 생각에 맞게 행동하려고 애써왔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그맨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놀리는 상황을 개그..

일상의 글 2021.04.18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신다면

2~3주를 내내 누워지냈다. 하루에 한 가지 일정 밖에 할 수가 없어서 출근과 퇴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겨우 씻고 겨우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일이 너무 힘들거나 지쳐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런 상태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걸까,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하지 스스로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 뒤에 멍울이 생기더니 하루 사이에 귀 옆 뒤통수까지 부어올랐다. 병원에 가보니 임파선염이라고 해서 일주일 간 약을 먹었다. 그 다음 주엔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었다. 기력이 너무 없어서 약을 지으러 왔다고 하니, 한의사 선생님이 ‘아무 것도 안해도 가장 건강할 나이’인데 맥도 약하고 소화기능도 떨어져 있다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나타나는 전..

일상의 글 2021.04.12

성별을 표기할 수 있는 편안함 또는 권력에 대해서

어떤 지원사업 공모기획안을 작성하다가, 구성원의 성별을 기입하게 된 칸을 만났다.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나의 성별을 적다가 찰나의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생각했다. 고민하지 않고 하나의 지정성별로 나를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얼마나 편리하며 편안한 것인지. 내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의 나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벽을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개인과 각각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한다거나 안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주 잠깐의 순간에 나에게 있는 권력에 대해 인지했다. 내가 편안한 그 순간이 타인에게는 차별의 순간이다. 공간을 이용하는 것부터 서류에 표기하는 것까지 아주 일상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주 편안한 동시에 차별의 순간이다.

일상의 글 2021.03.26